몇 해전에 독도문제가 생겨서 조사한 자료를 포스팅한 적이 있다.
http://www.wolfpack.pe.kr/247
따라서, 본 블로그 주인은 2번 우려 먹지 않는다.

단, 일본이 보복한다고 난리치는 통에 한마디 하고싶었다.

먼저, 관광객의 수부터 비교해보자.

다들 알고계시겠지만, 과거에는 한국으로 오는 일본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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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센가 한국이 일본 관광객중 최대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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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07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역전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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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계를 정리하면 이러하다.
06년까지는 상호 비슷한 수가 상대방 나라를 방문했는데, 07년부터는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쓰는 돈이 더 많아졌다.
즉, 관광객의 다수를 차지하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일본입장에서 손해이지 한국 손해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제 조금 더 큰 무역수지 쪽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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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변치 않은 자료이지만, 암튼 일본은 한국에 주로 수출하는 쪽이었다.
그 폭은 해마다 증가한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위 2개의 통계를 보자면, 결론은 하나다.

"한국이 일본의 갑이다."

다시 말해, 작금의 상황은 일본이 고객인 한국을 대상으로 더이상 안팔겠다고 뻐팅기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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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럴수 있다.
일본이야 무역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겨우 20%대니까.
그런데, 일본의 현 경제사정을 보면 이게 웃을 일이 아니다.

알고있다시피, 삼성 1개사의 매출액이 일본의 전 가전메이커의 매출을 웃돈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기업이 돈을 벌어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국민생활 안정에 기여하는데 현재 일본의 세수가 엄청나게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이다.

올 초에 발생된 사건을 보더라도 바로 알아 볼 수 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 ··· 993.html
(제목은 일본 31년만에 무역적자이다.)

일본은 현재 GDP대비 부채율이 무려 235.82%이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worl ··· 9760.htm
(참고로 부도난 그리스의 경우 GDP대비 부채율이 124.9%에 불과했으니...)

암튼, 일본의 경우는 그간 벌어놓은 달러로 버티는 중.

대표적으로 내놓는 통화스왑만 해도, 양국의 필요에 의해 한 것일 뿐.
한국만 좋자고 한건 아니다.
(모든 거래가 그러하다.)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본은 2011년 스나미를 아직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박살난 원전만 해도 이미 체르노빌따위는 멀리 던져 버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데,
복구비용은 추산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복구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

즉, 재정적자의 증가가 이전에는 톡톡톡톡 이었다면, 퍽퍽퍽퍽 소리를 내며 상승하는 상황이다.

세상에는 영원한게 없다.
대영제국이 오래 못갔듯이 일본 역시 그러하다.

그들의 우익들이 설치기 시작할 무렵부터 일본은 끝장난 기미를 보였다고 해야하나?
(세계 어느나라든 경제가 힘들면 우익이 설친다.)

2012/08/21 22:10 2012/08/21 22:10
일본 동경에 출장가면서 회고가 빠지면 섭섭하다.
몇번이나 회고를 올리려 했으나 프로젝트의 다른 파트에서 일정지연이 발생해 다른 파트로 파견나와 프로젝트 리딩중...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것 같아 퍼지기 전에 정리하려 한다.

1. 좋았던점
- 눈이 즐거웠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2. 후회한점
- 이동을 위한 시간 낭비가 많았다. 만약 자전거라도 임대해서 타고 다녔다면 더욱 시간을 아꼈을 것이다.
- 놓치는 부분도 많았다. 체력적으로 때앙볕 밑에서 몇시간씩 혜매고 다닌 끝에 등잔밑이 어둡다고 놓치고 지나갔다 설마하는 마음에 다시 갔던 매장에 찾던 물건이 있었다.

3. 새로 깨달은 것들
- 먼저 상권의 변화이다. AKIBA와 같이 아키하바라 역사에서 멀지 않은곳에 초대형 IT기기 매장이 생기자 상대적으로 고객의 발길이 떨어지는 중소형, 대형 매장의 상권이 다 죽어버린다.
- 작은 업체는 중대형매장에 비해 업종변경을 통해 살아 남는데 성공한다.
- 중대형 업체는 스스로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 즉 매머드 업체 하나로 인해 중, 대형 업체는 죽고 작은 업체는 계속 살아 남게 되어버린다.
- 즉, 매머드 기업의 생존 방식은 대형 상권을 장악하고 내부적으로 끊임 없는 효율화가 생존 지속에 중요한 요소이다.
- 반대로 소형 기업은 특화다. 틈새시장을 노려 상품을 특화시키고 시장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감지하여 변화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주종목도 바꿔야 살아 남는다.
- 이도 저도 아니면 스스로의 몸부게를 버틸 양분(이익)을 먹지 못해 결국 도퇴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키하바라 출장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할 생존의 원칙을 조금이나마 배우고 느꼈던것 같다.
"당신이 작은 슈퍼를 경영하는데 옆에 이마트가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작은 답이라고나 할까?
진리는 이마트에서 안파는 상품을 내다파는 것. 이것이 바로 변화이다.
독일군의 전격전 교리와 같이 적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만약 "이마트"사장이라면 거의 모든 물건을 내다 팔며 상권을 장악하고 초기 과다 투입되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찾아 효율화 시키는 것이 바로 경쟁력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2010/08/30 02:22 2010/08/30 02:22
전날 장비하나는 구입했고 온거리를 수색한 끝에 결국 추가장비 득템!
아마도 그때가 12시쯤이었던것 같다.
간단하게 식사후에 이제 자유시간.

이케부쿠로로 이동하여 관광에 나섰지만...
보이는것은 아키하바라 그이상도 아닌 그 이하였다... -_-;

이런 장면은 아키하바라에도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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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호객행위하는 것은 남대문 정도에서 보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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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호객장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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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 비싼 음식가격에 기가 질리는 것도 일본 동경의 모습이었다... (차라리 오사카가 우리랑 거의 비슷한 음식문화에 가격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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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던것은 초현대식 호화 쇼핑몰 입구에 이런 기모노 상점이 있다는 것... 한복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 같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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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아이들 시상식인지.. 무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카메라 셔터 세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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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야 아키하바라에서도 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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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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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것도... -_-;;

결국 나오는 길에 게임장에 들러 일본 게임장앞에 진치고 있는 거대 인형 뽑기 놀이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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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이동했더니 트레이딩카드를 이용한 멀티 게임이 있었고... 다들 한자리씩 않아 트레이딩 카드로 게임에 열중이다. 아마도 이거 한국에서 잘 만들면 사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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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500엔으로 좀 쎈편.. 그나마 관심 끌었던 폐인 양산 게임이었다.
늦은 시간 아키하바라로 다시 이동하여 가게앞에 진열된 멋찐 오토바이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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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 뒷골목은 가게마다 선인상가퍼럼 테마를 정해놓고 성업중이었다.
아쉽게도 시간이 모자라 다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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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당천인가 하는 시청자 서비스 애니의 주인공중 한명인 관우 피규어가 매우 많다는것에 놀랐고...

마침 문을 닫고 있던 관절인형 파는 곳이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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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 관절을 노출하고 있는 것도 아래처럼 관절이 표가 안나는 것도 있었다.
표현수위가 높아 빨강색으로 처리...
저렇게 목이하의 인형을 사다가 옷입히며 노는것으로 아마도 대상은 남자 성인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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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지막을 장식하고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 밤새 뒤척거렸다.
새벽이 넘어가자 슬슬 애니메이션이 TV로 부터 흘러나오며 High school of dead라는 출렁이는 가슴만 기억되는 애니를 보다 잠이 든다.
8:30까지 씻고 대기중에 급히 아침을 먹고 호텔에서 체크아웃!
밖으로 나오는 신기한 택시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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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가면 찍은 마지막 아키하바라.
아마도 다시 갈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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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레일을 탈수있는 역으로 이동하여 급행 모노레일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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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보이는 도쿄를 가로질러 도쿄만으로 흘러가는 이름 모를 강도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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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마당이니 모든 것이 새롭고... 공항의 한적함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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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 주는 식사로 점심을 대신하고 김치를 허겁지겁 집어 먹다보니 김포공항...
회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자 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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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 기념으로 질러준 마크로스의 히카루의 캇핏하나만이 남은 물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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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엔짜리 기념품이지만... 나름 한구석에 놓고 보니 괜찮은듯 하다.


2010/08/28 01:23 2010/08/28 01:23
일본으로 고객과 같이 아키하바라 출장을 떠납니다.
그런나 뱅기표가 무려 오후 4시경으로 새벽을 꼴닥세우고 현재 김포공항 국제선 출발로 새벽 6시에 도착하여 6시 10분부터 오픈하는 티켓팅 카운터에 기다리고 있다가 1빠로 첫 비행기인 8시 45분으로 등록했네욥 ㅡ,.ㅡ
자리가 생겨야 할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OTL
그나 저나 담배파는곳도 아직 안열어서 섭섭합니다 t.t
잠시후 자리 생기면 후딱 포스팅 하도록 하고 김포 공항을 방활하도록 하겠슴다...
(그나 저나 연아 목걸이 사오라는 마눌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는군욥....)

6시 50분 드뎌 담배 가게 문열었삼 므하하하하..

(이후는 오늘 다녀와서 씁니다. -_-;; 공짜 Wifi가 일본 스타벅스에는 없었다입니다.. -_-a)

8시쯤 공항에서 급하게 찾아서 대기자 1순위로 뱅기에 몸을 실었슴다.
신나게 뛰어서 담배 한보루 손에 들고 길게 늘어선 결재라인을 통과하여 지금 뱅기 타야한다고 우기고는 결재 성공..
다시 뛰어서 뱅기 보딩타임에 겨우 Safe하였슴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아키하바라에 도착한것이 약 1시경입니다.

* 짜잔하고 등장한 하네다 공항의 무시무시한 안내 표지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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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쮠 remm 호텔에서 체크인하고
* 아마도 혼자 갔다면 근처에서 밤세우며 숙박비를 아꼈겠지만... 고객사 담당 매니저 앞에서 회사 망신시키기 싫어 오기로 23000엔짜리 끊고 드갑니다. 정산 우케 할지 앞이 깜깜하기만...
* 들어가면 입구에 화장실과 샤워룸이 유리로 보이고 (잠깐! 여긴 1인룸입니다. 이상한 상상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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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이 아주그냥 쫍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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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침대는 1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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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보이는것이 안마의자인데 얼마나 쫍냐면... 안마의자에 몸을 맡기고 발을 뻗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_-;

아무튼 용던 탐험보다 더 빡센 아키하바라 탐색에 들어갑니다.
지리라고는 관광가이드 책자 한권이 전부이고...

아참... 우리의 출장목적은 현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사용할 H/W를 테스트용으로 구매하기위해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장비를 구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상상속의 아키하바라는 곳곳에 전자제품이 널려있고 PC도 쉽게 구할수 있는 그런곳이었습니다.
일단은 숙소와 가까운 Akiba라는 곳부터 수색들어갔습니다.

* AK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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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큰 오타쿠 백화점입니다.
전자제품과 피규어, 카메라 이런것만 취급하는데 어떻게 취급하냐면...

이런식으로 e-MART에서 자동차, 의류, 식품을 뺀 나머지는 다 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야말로 옥션의 현실 재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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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피규어 사진이 많지만... 이런식으로 팝니다..
낮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고 한층 한층 구경하는것만해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요... -_-;;
암튼... 여기서 PC 부품과 베어본을 구입하려 시도했지만.. 일단 실패..
이제 한번쯤 아키하바라 한바퀴 돌아보자에 의기투합하여 아키하바라 거리로 본격적으로 나가봅니다.

* 가장 먼저 눈에 띈 언니는 메이드 언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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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전단지 나눠줍니다. 안받아주면 울어버릴것 같아 받아 줍니다.
안주면 끝까지 가서... -_-;;
* 우리의 두눈에 비친 아키하바라의 첫모습이었습니다. 저 곳을 지나가면 드뎌 우리의 성지가 들어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달려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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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모에의 성지로 변했더군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10년전 컴잡지에 나온 아키하바라를 상상하던 그 것은 한방에 날라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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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뒷골목 거리에서는 DIY Shop이라는 이름으로 연명하고 있더군요. (몇시간을 뺑뺑이 돌고 찾아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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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기쁨은 잠깐... 현실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더이상 IT하드웨어가 중심에 있지 않고 그 공간을 소프트웨어가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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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그 소프트웨어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지언정...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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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면서 눈이 즐거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뒷골목을 전전하고 있는 예전에 알고 있던 IT총본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찾고자 하는 하드웨어를 구하지 못했음에도 무언가 알수 없는 잔잔함이 밀려오더군요.
더구나 몇몇 대형 PC관련 양판점은 문을 닫고 철조망까지 쳐져 있는 모습에... 좌절했었습니다.

결국은 드뎌 우리가 사고자 했던 베어본 2대중 1대를 득템하고는 발길을 돌려 저녁을 먹으러 갔습죠.
저녁후에 여유를 조금 가지고 둘러본 애니메이션 한장면을 간판으로 하는 가게로 쳐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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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헉 말로만 듣던 OO돌이더군욥. 키는 약 150cm 정도되어 보입니다.
애네들 옷은 따로 사입혀야하구요.
아무튼 사진을 더 찍을려고 했지만 종업원의 제지로 추가 사진 불가...
남정네 둘이서 계속 얼굴 붉히며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들었던 각종 ??용품을 만져보면서 "돼지고기"같다는 생각과 함께 OO샾에 그토록 많은 일본인 및 외국인 아낙들과 마주쳤는데.. 민망하기보다는 서로 그냥 필요한것 구경하러(?) 왔다는 표정... *-_-*

밖을 나오니 모에의 총본산 다운 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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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입고 있어서 그렇지... 키가 제 어깨정도로 약 155cm 내외정도로 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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죙일 걸어다니며 안돼는 영어에 지쳐버린 우리의 힘든 발걸음을 세운것이 바로 이것!
건.담.카.페.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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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각종 건담 관련 컨셉으로 만든 과자, 음료, 프라모델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우의 목소리로 건담에 나오는 전투함 전투 지휘실을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8시에 복귀해서 전날 날샘으로 퍼져 버렸군요...

2010/08/23 06:45 2010/08/2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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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매들의 전매특허로 제원부터 뒤져보자.
전장 : 9.42m
전폭 : 3.24m
전고 : 2.3m
중량 : 약 44톤
토션방식 : 유기압
속도 : 70km/h 이상
주포 : 120mm 저압포
부무장 : 12.7mm / 7.62mm 각 1문
장잡 : 모듈식 복합장갑
승무원 : 3명
개발비 : 총 484억엔
대당구매비용 : 약 7억엔 (공식), 2009년 4년 구매예산 예측치는 9.6억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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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한국이 K-2 흑표를 공개할 시점에 공개된 일본의 차기전차이다.
74식 전차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되어 극단적으로 작은 크기를 지향한다.

* 이녀석이 바로 대체목적인 74식 전차 총 893대가 제작되어 2006년 이후로 700대가 운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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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식 전차를 운용하다 90식이라는 당시로는 괴물을 제작운용한 일본은 90식의 엄청난 무게로 인해서 화물차량 수송이 불가능해졌다는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그덕에 90식은 일본 본토보다 구소련의 위협이 있던 훗카이도(북해도)에 눌러앉아 운용하는 신세가 되었다.

* 90식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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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90식 전차 이녀석은 일본 본토에서는 운용이 불가하다며 해외 전지훈련(미국)은 잘도 다닌다.
운용 불가사유가 어처구니 없게도 "화물열차에 실을수 없다"이다.
그럼 도로로 다니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것도 일본의 사정을 들여다 보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일본의 도로규정은 2.75m~3m의 폭을 가진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는 3m ~ 3.5m)

* 여기는 도쿄 신주쿠의 4차선 도로입니다... 자위대 전차 승무원에게는 지옥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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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의 자랑 90식 전차는 무려 3.3m! 74식 전차는 3.15m이다.
이 덕에 일본의 전차는 최대한 열차수송에 목숨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자니 크고 무거운 전차는 못만든다!
만들어도 다른 지역으로 수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작고 한방있는 전차로 갈련다가 바로 일본의 전차개발개념인데...
가만히 보면 일본역시 미쿡의 FCS(Future Combat System)을 도입할 수 밖에 없을듯 하다.

* 미쿡횽들의 후덜덜덜한 F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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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17:32 2009/09/01 17:32
예전에 사무라이는 할복하지 않았다는 글(http://www.wolfpack.pe.kr/34)에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라는 자에 대해 언급한적이 있다.

일본 자위대에 들어가 자위대 건물을 점거하고는 자위대에게 반란을 획책한자이다.
일본 극우의 정신적인 지주이기도한 그는 사실 일본군 병역기피자로 만성 독감으로 군의관을 속여 면제된 경력이 있는자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얼마나 일본은 모순된 이성을 지니고 있는지 새삼 깨닿는 기사라고나 할까?

'가미가제' 나라의 병역기피 

프레시안  기사전송 2008-05-20 15:21

[권혁태의 일본 읽기] <11> 병역기피자들의 戰後
[프레시안 권혁태/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아들을 '팔아넘긴' 어머니의 이야기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중에 미쿠니 렌타로(三?連太?, 1923∼ )라는 사람이 있다. '낚시광 일기(釣りバカ日誌)'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인기 시리즈 영화의 주연배우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영화는 1988년 처음으로 만들어진 이래, 매년 하나씩 개봉되어 2007년 현재 무려 17번째 편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작품에서 코믹 연기로 유명한 미쿠니는 폭 넓은 연기와 온화한 성품으로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밝고 대중적인 그에게도 전쟁과 전쟁으로 얼룩진 가족사가 역사로 감추어져 있다.
사실 그는 병역 기피 미수범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43년 다른 사건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중에 소집영장을 받게 된다. 경찰은 그를 '군대에 보내기 위해' 훈방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의미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죽이기 위한 훈련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일본 열도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조선을 거쳐 중국으로 탈출하려고 했던 그는 일본 열도를 남하해 야마구치(山口) 현의 오고오리(小郡)에서 자신의 탈출 계획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낸다.
"나는 도망갈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을 '왕따'시키겠지요. 힘이 들 겁니다. 동생들도 앞으로 여러 가지로 고생하겠지요. 그러나 이게 마지막 불효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어요. 살아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선으로 가기 위한 배를 타기 위해 도착한 규슈의 북단 사가(佐賀)현 가라쯔(唐津)라는 곳에서 특별고등경찰에 체포된다. 결국 그는 형무소에 가는 대신, 군대를 가게 된다. 중국 전선으로 떠나기 직전에 면회를 온 어머니는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한다. "아들아, 너에게는 힘든 일이겠지만, 우리 일가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전쟁터에 가주어야 한다."
이 때 그는 왜 자신이 잡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형무소로 가지 않고 왜 군대로 갈 수 있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보낸 편지를 어머니가 경찰에 밀고한 것이다. 말 그대로 아들을 경찰에 '팔아넘긴' 것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중국 전선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그는 말한다. "어머니가 내 편지를 경찰한테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그 일을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으셨지요."
미쿠니 말고도 일본의 유명 인사 중에는 병역 기피자나 거부자가 적지 않다. 일본 근대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쯔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도 징병기피자이다. 그는 홋카이도로 본적을 옮기는 방식으로 징병을 기피했다. 인구가 부족했던 당시 홋카이도에서는 '개척'을 위해 본적지를 옮길 경우 징집이 유예되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는 홋카이도에 살지 않았다. 일종의 '위장전입'이었던 셈이다. 그가 징병 기피에 성공한 이후, 1898년에 홋카이도에도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또 희극배우로 유명한 반 준사부로(伴淳三?, 1908-1981)는 화장을 짙게 한 여장 차림에 간장을 대량으로 마셔 병역면제 조치를 받았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독감을 만성병인 것처럼 속여 병역면제를 받았다. 그가 전후에 과도하게 '몸'에 대한 심미적 집착을 보이게 된 것이나, 1970년 자위대 기지에 들어가서 쿠데타를 선동하고 할복자살한 하게 된 것은 병역기피라는 개인사가 배후에서 '반동'으로 작동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방랑 화가로 알려진 야마시타 기요시(山下?, 1922-1971)는 징병 검사 연령 직전에 집을 나와 전국을 방랑하는 형태로 징병에서 벗어났다.
물론 병역 기피 혹은 거부는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서는 약 57만 명이 징병에 따르지 않았고, 이 중 2만 5000명이 기소되었으며, 9000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은 캐나다 유학을 통해 징병을 피했다.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이슬람교의 원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서 챔피언 벨트까지 박탈당했다.

일본의 징병기피의 역사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국화와 칼>(1946)에서 전쟁 중에 나타나는 일본 군인의 과도한 정신주의적 헌신성, '무항복주의'를 일본 사회 고유의 '수치심'(하지, 恥)의 문화에서 찾고 있듯이 '일본군'이라는 단어로부터 우리는 잔인함과 아울러 정신주의, 그리고 맹목적인 충성, 그리고 헌신성을 떠올리게 된다.
가와노 히도시(河野仁)가 2차 세계대전 시의 미군과 일본군의 행동패턴을 비교분석해 미군을 '생환의 군대'로 일본군을 '옥쇄의 군대'로 묘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사 연구자인 존 다워(John W. Dower)는 당시의 미국인에게 일본군은 "이상한 규율과 전투 기술을 가진 일본인 초인(슈퍼맨)"으로 각인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옥쇄', '산화', '가미가제', '집단자결', '할복'이라는 단어는 이 같은 이미지의 대표적인 표상어이다. 이 같은 이미지 때문에 전전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병역 기피자나 거부자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징병령이 1873년에 실시되고, 이것이 1927년 병역법이라는 형태로 강화되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11월 17일에 폐지되기까지 일본에서 병역 기피나 거부는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면제 규정이 폭넓게 운용되고 있었던 탓에 현역 입영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 침략,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이 확대되면서 현역입영률은 대폭 상승하게 되지만, 병역 기피 현상은 별반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1916년-1931년까지의 <육군연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마다 병역 기피자 및 도망자가 최저 2만 3513명(1931년)에서 최고 4만 4456명(1916)에 달했으며, 징집대상 최고 연령인 만 40세까지 계속 도망하는 자가 매년 평균 1000명 이상이며, 가장 많았을 때는 3447명에 달했다고 한다.
병역 기피나 징병 거부의 양상도 시기에 따라 많이 다르다. 징병령 초기에는 농민이 죽창, 낫 등으로 무장봉기하여 관청을 습격하고 학교, 집회를 방화, 파괴하는 등 메이지 국가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자연발생적이면서 대중적 반대운동의 형태를 취한다. 이후 병역기피는 면제규정을 이용한 합법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징병을 대신해 돈(대인료)을 납부하거나 양자 입적, 호적 매매 등 법 조항을 교묘하게 이용해 합법적으로 징병을 기피하는 행위가 일반화된다. 당시에 일종의 유행병적인 사회현상으로 등장하면서 합법적 병역 기피를 교시하는 출판물이 범람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메이지 정부가 현역입영율을 높이기 위해 징병 면제 규정을 대폭 삭제하자 병역 기피는 훨씬 은밀화된다. 병역기피자는 정부나 군부는 물론 일반국민으로부터 '국적(國賊)' 또는 '비국민(非國民)'으로 불리면서 헌병이나 경찰로부터 지속적인 추적을 받게 된다. 따라서 병역기피자는 도망, 실종, 신체훼손, 계획적인 사기에 의한 꾀병 등 징병회피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이 시기의 특징은 개인적, 폐쇄적 환경 속에서 홀로 생명의 위험과 권력의 추적을 의식하면서 이루어진 고립적인 형태로 진행되게 된다. 이 시기에 주로 사용했던 '신체훼손'에 의한 병역기피의 방식을 경찰 쪽 문서(1921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사용해서 고도 근시가 되는 자, 아무 이상 없는 눈을 근시처럼 안 보인다고 하는 자, 눈에 자극적인 물질을 넣어 안구를 충혈 시키는 자, 검사 전날 밤 수면을 취하지 않아 눈을 충혈시켜 눈병이 있는 것처럼 하는 자, 귀속 깊숙이 콩을 넣는 자, 고막에 깃털을 넣어 청력에 이상을 일으키는 자, 이를 일부러 빼는 자, 간장을 마셔 심장 박동을 높여 심장병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자, 검사 전부터 단식해 몸을 쇠약하게 만드는 자, 손가락을 절단하는 자"
물론 병역기피 등이 드러날 경우 징벌은 무거웠다. 1927년에 강화된 병역법에 따르면, 병역을 피하기 위해 도망 혹은 신체를 훼손시키거나 꾀병을 부리는 자는 징역 3년 이하(74조), 현역입영예정자가 10일 이내에 입영하지 않을 경우에는 6개월 이하의 금고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75조). 하지만 실제로 이런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 것 같지는 않다. 위에서 언급한 미쿠니의 사례가 이를 잘 말해준다. 병역법 규정대로라면 미쿠니는 적어도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징역형 대신에 입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적극적인 병역거부자에게서도 발견된다. 일본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종교적인 이유와 사상적인 이유로 대별되는데, 필자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 처벌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1호로 기록되는 야베 키요시(矢部喜好, 1884-1935)는 러일전쟁 시대인 1905년에 병역거부를 하지만 금고형 2개월의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무교회주의자인 반전 문학자로 알려진 이시가 오사무(石賀修, 1910년- )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에 병역거부를 실행에 옮기지만 4개월 구속 후 벌금형에 처해졌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1922년에 군적을 이탈한 스다 기요모토(須田?本)의 경우는 처벌을 받은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징병기피자의 전후(戰後)
그렇다고 한다면, 병역 기피자의 전후는 어떠했을까? 1945년 11월에 일본군대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도쿄재판에서 적어도 1931년 이후의 일본의 전쟁은 잘못된 것으로 국제적인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약 1000명의 전범이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한다면, 침략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한, 혹은 동원되는 것으로부터 도망간 병역 기피자나 거부자가 전후 생활 속에서 영웅대접까지는 아니더라도 '왕따' 취급은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전쟁은 잘못된 것이니, 잘못된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거나 피한 사람들의 선택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병역기피자의 전후는 병역기피자의 전전과 전후를 상호 교차적으로 다루고 있는 마루야 사이이치(丸谷才一, 1925∼ )의 소설<사마쿠라(笹まくら)>(1967년)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작품으로 마루야는 가와데(河出)문화상을 수상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위에서 말한 미쿠니 렌타로가 모델이라고도 하지만 오히려 화가 야마시타 기요시의 방랑을 통한 병역기피에 가깝다. 작가인 마루야 자신은 1945년에 군대에 가서 살아 돌아왔으니 작가 자신이 모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줄거리는 이렇다.

1960년대 중반 사립대학의 서무과 직원은 병역기피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 1940년 그는 "죽는 게 싫어서, 혹은 죽이는 게 싫어서" 소집영장(아카가미, 赤紙)을 받고 입대를 하루 앞둔 저녁에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집을 나온다. 원래 공업고등학교 출신인 그는 라디오를 고쳐주는 일을 하거나 아이들을 상대로 모래로 그림을 그려주는 '스나에시(砂?師)'를 하면서 전국을 5년 동안 방랑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방랑이 아니라 병역기피이고, 거부인 셈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다. 그는 당연히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가 도망 다닐 때에 어머니는 자살했고, 남동생은 병역기피자인 형 때문에 경찰에게 맞아 고막이 터져 평생을 청각장애인으로 살게 되었다. 군대로 간 절친한 친구는 군대에서 자살했다. 그래서 그는 대기업 취직을 마다하고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비정치적으로 전후를 살고자 한다. 그래서 택한 곳이 사립대학 서무과 직원이다. 하지만 이 대학은 일본의 '국가 신토(神道)'의 영향이 아주 강한 우익적인 대학이다. 예를 들면 대학 정문 한 옆에는 신전(神殿)이 있는데, 대학을 출입하는 대학 관계자는 반드시 신전을 향해 목례를 해야 한다. 그는 다른 좌파 교수나 학생들과는 달리 반드시 이 신전에서 목례를 한다. 그에게는 병역기피라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의 일본에 다시 국가주의의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용하게 살려 했던 그에게도 국가주의의 바람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주위에서 병역기피의 과거와 연결지려는 시선이 강해진다. 승진을 앞둔 그는 시골 학교로의 좌천을 통보받는다. 물론 병역기피라는 과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이 다시 병역 기피자를 잡으려 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다시 탈출=기피를 꿈꾼다. 다시 전국 방랑을 꿈꾸는 것이다.
'사사마쿠라'란 일본의 옛 시가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우리말로는 '대나무 밭의 베개'라고 번역할 수 있다. 대나무 밭에서 대나무를 베개로 삼고 눕게 되면, 죽순 때문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다. 즉 불편하고 불안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병역기피자인 그에게 도망 다니던 시절의 불안하고 불편한 심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불안한 심리가 전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조심조심 전후를 살아왔지만, 결국 다시 병역기피라는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에게 '사사마쿠라'로 표현되는 병역기피자의 불안은 계속되는 것이다.
작가 마루야의 시선은 당시의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이 간과했던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의 역사학이나 사회과학, 그리고 일반 사람조차도 전전의 어두운 시절은 1945년 8월 18일로 끝났으며, 그 날부터 시작되는 전후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밝은 시대였다는 소위 단절론적인 역사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루야는 전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통해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45년 이전에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나 집단이 전후에 와서 명예회복, 손해배상, 진상규명을 국가에 요구한 사례는 없다. 유일하게 있다고 한다면, 1942년에 중앙공론(中央公論), 개조사(改造), 아사히(朝日) 신문 관계자 약 60명이 체포되고 30명이 기소되었으며, 이 중 4명이 옥사한 요코하마(?浜) 사건이 유일하다. 2005년 이 사건 관계자와 가족들이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
결국 '주어진 민주주의'와 '쟁취한 민주주의'의 차이일지 모른다. 이것이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의 한계인 것이다. 마루야가 이 작품을 썼던 1960년대보다 훨씬 '과거 회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사사마쿠라'는 적어도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장 절실한 심리상태일 것이다.
권혁태/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anotherway@pressian.com)

2008/05/21 13:25 2008/05/21 13:25
아베, 부시에게 `위안부' 해명 전화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3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아베 총리가 구(舊)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재차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뜬 뉴스. 방금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구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이라고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일본군이 정치까지 장악했지만 사실 일본정부라는 표현이 옳다.
군국주의 국가에서 정치와 군부는 뗄레야 뗄수 없으며 군부=정부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일본은 "과거 일본정부"라는 표현대신 "과거 일본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바로 아베총리의 정치적 생명선이 "자민당"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민당(자유민주당)은 1955년 일본의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쳐져서 만든 당이며 2차세계대전 이후 야당이 된적은 딱 1번 1993년 7개의 군소정당이 모여 일본신당을 만들었고 호소카와 모리히토수상을 내면서이다. 그러나 1년도 채 못된 시점인 1994년 9월 일본신당과 다시 연립을 구성하여 여당으로 복귀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자민당의 정치적 원천 다시말해 정치원로가 모두 2차대전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자들이다. 다시말해 자민당자체가 전쟁지도부의 입법기관이었고 전쟁지도부였다.
이는 마치 독일의 나치당이 현재까지 존재하는것과 같은것이다.

이들은 한국 또는 중국이라는 나라에게 눈꼽만치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며 "약육강식의 시대에 약한것이 죄이며 자신들은 공교롭게도 강했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일본에 있어 가장 화려한 시기였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미워하는 고이즈미만 하더라도 할아버지 마타지로, 아버지 준야도 중의원을 지냈으며 특히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는 방위청 장관까지 지낸사람이다.
그뿐인가? 오늘날 일본의 정치거두인 아베총리도 부친이 외무장관인 아베신타로이며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다.

이제 감이 오는가? 2차세계대전의 원흉이고 그 이전에 한국과 중국을 밟아버린 전쟁지도부의 자식들이 대대손손 정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민주주의라 불러야 하는지?)

그런 자들이 할아버지 아버지 얼굴을 침을 뺃는 "우리 잘못이 존나 많습니다. 과거사를 인정하게습니다."이렇게 이야기 할까?

현재 피땀흘린 재미 한인들의 한표 한표 모아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 낸다 할지라도 본질적인 부분 일본의 사고는 일본 정치부가 시민혁명 또는 시민운동에 의해 끌려 내려오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을것이다.  그들은 아직 영광된 일본 제국의 향수에 빠져있으며 어떻게든 한반도를 거쳐 만주로 진출하려 할 것이다.

이제 우리 경쟁관계인 일본의 본질을 보았고 큰햄 미국의 입장을 함 보자.
(뭐 거부감 느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국제역학상 미국을 큰햄으로 안보는 나라는 프랑스, 중국, 러시아 정도 되겠다. 나라 힘이 이정도 크면 미국왕따시키도록 하고 현재는 미국 꼬봉이 현실아닌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1차세계대전이후에 강국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그러다가 2차세계대전치르면서 형님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된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적이 많다"라는 거다. 아니 "적이 많이 생겼다."가 맞는 말일까?
아무튼 심심하면 전쟁하는 미국의 입장이면에는 주구장창 쥐어터지는 자국민이나 자국회사들이 한몫한다. 미국의 적들입장에서 보자면 미국보다는 만만한 민간인 쥐어 패는게 딱일테고... 같은 의미지만 또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1위자리의 사수이다. 왕이 된자가 왕자리에서 쉽게 못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제왕의 자리를 지켜야하는 팔자가 된거다. 그러니 기어오르려 하는 넘에겐 한대 쥐어박아서 다시 기어오를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기어오르려 하는 넘이 바로 "중국"과 "북한"인것이다.

북한이야 지지리도 가난한데다가 항공모함을 포함하는 기동함대난 스텔스 전폭기 대대만 보내도 "아~ 시바. 말로 하자니까? 왜그래?"이러니 솔찍히 미국입장에서는 관리가 되는 나라중에 하나이다. 요즘 핵만들어서 쬐끔 기어오르려하지만 뭐 그것도 미국입장에서는 본토가 두들겨 맞지 않는다는 자신이 생긴지금은 참아줄수 있는 정도이다. (한국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금번 6자회담은 결렬되어야 한다. 현재의 북한 기술로는 스커드정도의 무기에 핵탑재하는것이 전부인지라 가장 두들겨 맞을 가능성이 큰것이 한국이다. ㅡㅡ;;) 결국 남는것은 중국인데 중국이라는 나라가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도 아닐뿐더러 미국의 또하나의 우방인 대만을 보호하기위해서라도 중국을 봉쇄해둘 필요가 있다. (이 결정은 정말 잘한것이다. 생각해보라 티벳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사라졌는가? 만주어가 어떻게 사라져가는가를.. 이웃국인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중국의 서쪽이야 황량하기 이를데없고 남쪽은 미국의 우방인 인도, 파키스탄 등이 있으니 걱정 덜해도 되고 베트남이야 중국과 전쟁치른 나라이니 또 걱정덜해도 되지만 이 동쪽이 문제이다. 중국의 지도를 들여다 보면 중국의 베이징, 상해, 홍콩 등 중국의 핵심 도시와 전략거점이 될만한 곳은 죄다 동쪽에 몰려 있다. 결국 중국의 심장인셈인데 중국의 심장에 칼을 데고 있으면서 중국을 다룰필요가 있는것이다.
물론 그일을 미국이 직접할 필요는 없다.
결국 그 일을 할 꼬봉이 필요한다. 최상의 장소가 바로 한국과 일본이다. 지상병력 발진기지로써 최적의 장소는 오키나와이지만 수많은 병참물자를 저장하고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서 전투기나 폭격기를 띄워야 하며 함대를 쉬게하는데도 이상적인 장소를 꼽으라면 당연 투입시간이 짧은 한국과 비교적 시간이 걸리지만 안전한 일본 되겠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 50년간 한국은 육상부대 중심으로 일본은 기동부대와 항공기 기지 중심으로 키워온것이다.
근데, 오른팔 왼팔이라 할 한국과 일본이 근례에 계속 토닥토닥거리니 미국입장에서 짜증날수 밖에...
결국 일본에다가 과거사 인정하라고 압력을 넣고 아베가 전화로 인정한다는 발언을 한것이다.

아~ 그래서 나라가 크고봐야 하고 나라가 힘이 있고 봐야 하나보다.

아무튼 우울한 하루되겠다.
2007/04/04 14:14 2007/04/0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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