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야기를 풀기전에 욤키푸르,라마단,10월전쟁이라고 불리워지는 전쟁의 영웅 한명의 이야기를 하나 하고 들어가도록 하자.
츠비카 그린골드라는 사나이로 현재는 군인생활을 접고 이스라엘 화학회사의 전무이사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1973년 10월 6일 개전당시 젊은 중위로 아직 보직조차 받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 물론 욤키푸르(아랍에서는 라마단)이라고 하는 속죄일. 다시말해 휴일을 보내고 있던 그가 부대에 있었다면 당직근무였을것이다.
암튼 그날 오후 2시에 머리위로 전투기가 지나갔고 무전을 통해 개전사실을 알았다. 급히 제복으로 갈아 입은후에 뛰어나가 자신의 부대 숙영지로 복귀한후 M3하프트럭의 무전기를 통해 발령 받기전의 부대를 호출해서 명령계통에 들어갈것을 승락받고 전투후 수리를 위해 숙영지로 돌아온 센츄리온 전차 4대를 발견인수했다. 그러나 가동이 되는전차는 1대뿐이었고 승무원중 2명은 부상을 입은 상태이며 나머지는 쇼크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다른 부대에서 1대를 받아 총 2대로 전장으로 달려 간다.
수리가 끝나자 이 겁없는 전차장은 2대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Zvika's Force"(츠비카 부대)라고 이름 붙여버린후에 연대 무선망에다가 "즈비카 부대가 구원을 가겠다"고 통보해버린다.
(무슨배짱인지 2대의 전차에다가 멋대로 "부대"라는 이름 붙여버린... 황당한 배짱이다.)
더 황당한것은 고전하고 있던 기갑 부대 전체가 이 달랑 2대 전차를 구원군으로 착각해버리고 희망이 없던 기갑부대에 힘을 불어넣어 버린것이다.
"이제곧 지원군이 온다! 조금만 더 버텨라!"
그렇게 전선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수백대의 시리아군 기갑사단 T-62전차가 전진해 오고 있었고 첫교전에서 자신이 타고온 전차에 이상이 생겨 다른전차로 갈아타고 타고있던 전차는 수리를 위해 기지로 돌려보낸다.
이 황당하고 배짱좋은 중위는 2가지를 느꼈다고 술회하는데 첫째, 생존확률 0%와 고독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책임감이었다고 하며 책임감을 더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없게도 단 1대의 전차로 수백대의 전차를 농락하고 있었다. 쏘고 뒤로 퇴각해서 은폐하고 다시 쏘고 이렇게 반복함으로써 시리아군은 대규모의 이스라엘 기갑부대에 반격당한줄 알고 진영을 재정비하기위해 멈추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였다.
이때 본인은 한 10대정도 명중시킨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최초 탑재한 72발의 전차탄을 다 소모하자 파괴된 다른 아군 전차에서 포탄을 옮겨와서 보급을 마치고 또 이동과 사격을 계속 하였다고 한다.
그날밤 우지중령이 지휘하는 8~9대의 지원군이 합류했고 시리아군 T-55 수십대와 조우. 수식간에 3~4대의 이스라엘 전차가 피격되었지만 2~3대씩 짝을 지어 전진하자고 건의하였고 순간 패닉에 빠진 아군전차에 뒷통수를 맞고 운전병은 전사. 다른 승무원은 탈출. 본인은 양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다른 전차로 옮겨탄다.
나머지 2~3대는 부상자를 싣고 후퇴해버려 결국 츠비카 중위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게 밤을 보낸후 2일째 나바크 기지를 공략하기위해 시리아 T-62 수십대가 몰려 들어왔고 부여단장이 끌고온 6대의 전차와 13대의 동원기갑중대를 증원받아 20대로 전투에 임하게 된다.
야시장비가 없어 힘겨웠던 야간에 비해 수킬로 밖에서 명중탄을 날리는 이스라엘군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게 되었지만 정작 나바크 기지는 북쪽으로부터의 보병, 전차 합동공격에 의해 이곳으로 이동하던 바라크 기갑여단은 여단장, 부여단장, 작전참모등의 지휘부가 전사하게 되어 지휘망이 붕괴되었다.
츠비카 중위는 방어를 위해 나바크 기지로 복귀해 단 2대의 전차로 언덕에서 나바크 기지를 공격하던 시리아군 전차를 제압하여 퇴각할 시간을 번다.
나바크 기지에서는 츠비카중위가 유일한 장교였고 츠비카 중위 차량 운전병은 전투스트레스로 철수하는 장갑차에 몸을 싣고 도망가버렸다. 후에 인사장교에게 연락해서 인사장교가 조종수를 지프에 태워 직접 나바크 기지로 왔으며 최후방어전을 치르기위해 회의하던도중 정보장교 품에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7일후 전장으로 복귀하였다.
30시간의 혈투끝에 그는 살아 남았고 기억나는 격파만 20여대의 적전차를 잡았다고 했지만 전투후 각종보고를 통해 60여대 이상을 격파한것으로 공식 기록되었다.
2년뒤인 1975년 이 전쟁을 통해 단 8명만이 받은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 2차 세계대전의 독일전차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보다 더 격렬했고 우수했다. 왜? 혼자서 그 많은 적을 상대한것도 한것이러니와 그것보다 적보다 대등하거나 야간에는 오히려 열세의 장비를 가지고 싸웠기 때문이다.
츠비카 그린골드라는 사나이로 현재는 군인생활을 접고 이스라엘 화학회사의 전무이사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츠비카 그린골드]
1973년 10월 6일 개전당시 젊은 중위로 아직 보직조차 받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 물론 욤키푸르(아랍에서는 라마단)이라고 하는 속죄일. 다시말해 휴일을 보내고 있던 그가 부대에 있었다면 당직근무였을것이다.
암튼 그날 오후 2시에 머리위로 전투기가 지나갔고 무전을 통해 개전사실을 알았다. 급히 제복으로 갈아 입은후에 뛰어나가 자신의 부대 숙영지로 복귀한후 M3하프트럭의 무전기를 통해 발령 받기전의 부대를 호출해서 명령계통에 들어갈것을 승락받고 전투후 수리를 위해 숙영지로 돌아온 센츄리온 전차 4대를 발견인수했다. 그러나 가동이 되는전차는 1대뿐이었고 승무원중 2명은 부상을 입은 상태이며 나머지는 쇼크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다른 부대에서 1대를 받아 총 2대로 전장으로 달려 간다.

[6일전쟁때의 센츄리온]

[6일전쟁때의 센츄리온 전차와 승무원들. 하차 전투수행을 위해 우지를 소지하고 있다.]

[욤키프 전쟁때의 센츄리온 전차]
수리가 끝나자 이 겁없는 전차장은 2대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Zvika's Force"(츠비카 부대)라고 이름 붙여버린후에 연대 무선망에다가 "즈비카 부대가 구원을 가겠다"고 통보해버린다.
(무슨배짱인지 2대의 전차에다가 멋대로 "부대"라는 이름 붙여버린... 황당한 배짱이다.)
더 황당한것은 고전하고 있던 기갑 부대 전체가 이 달랑 2대 전차를 구원군으로 착각해버리고 희망이 없던 기갑부대에 힘을 불어넣어 버린것이다.
"이제곧 지원군이 온다! 조금만 더 버텨라!"
그렇게 전선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수백대의 시리아군 기갑사단 T-62전차가 전진해 오고 있었고 첫교전에서 자신이 타고온 전차에 이상이 생겨 다른전차로 갈아타고 타고있던 전차는 수리를 위해 기지로 돌려보낸다.
이 황당하고 배짱좋은 중위는 2가지를 느꼈다고 술회하는데 첫째, 생존확률 0%와 고독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책임감이었다고 하며 책임감을 더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없게도 단 1대의 전차로 수백대의 전차를 농락하고 있었다. 쏘고 뒤로 퇴각해서 은폐하고 다시 쏘고 이렇게 반복함으로써 시리아군은 대규모의 이스라엘 기갑부대에 반격당한줄 알고 진영을 재정비하기위해 멈추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였다.
이때 본인은 한 10대정도 명중시킨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최초 탑재한 72발의 전차탄을 다 소모하자 파괴된 다른 아군 전차에서 포탄을 옮겨와서 보급을 마치고 또 이동과 사격을 계속 하였다고 한다.
그날밤 우지중령이 지휘하는 8~9대의 지원군이 합류했고 시리아군 T-55 수십대와 조우. 수식간에 3~4대의 이스라엘 전차가 피격되었지만 2~3대씩 짝을 지어 전진하자고 건의하였고 순간 패닉에 빠진 아군전차에 뒷통수를 맞고 운전병은 전사. 다른 승무원은 탈출. 본인은 양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다른 전차로 옮겨탄다.
나머지 2~3대는 부상자를 싣고 후퇴해버려 결국 츠비카 중위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게 밤을 보낸후 2일째 나바크 기지를 공략하기위해 시리아 T-62 수십대가 몰려 들어왔고 부여단장이 끌고온 6대의 전차와 13대의 동원기갑중대를 증원받아 20대로 전투에 임하게 된다.
야시장비가 없어 힘겨웠던 야간에 비해 수킬로 밖에서 명중탄을 날리는 이스라엘군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게 되었지만 정작 나바크 기지는 북쪽으로부터의 보병, 전차 합동공격에 의해 이곳으로 이동하던 바라크 기갑여단은 여단장, 부여단장, 작전참모등의 지휘부가 전사하게 되어 지휘망이 붕괴되었다.
츠비카 중위는 방어를 위해 나바크 기지로 복귀해 단 2대의 전차로 언덕에서 나바크 기지를 공격하던 시리아군 전차를 제압하여 퇴각할 시간을 번다.
나바크 기지에서는 츠비카중위가 유일한 장교였고 츠비카 중위 차량 운전병은 전투스트레스로 철수하는 장갑차에 몸을 싣고 도망가버렸다. 후에 인사장교에게 연락해서 인사장교가 조종수를 지프에 태워 직접 나바크 기지로 왔으며 최후방어전을 치르기위해 회의하던도중 정보장교 품에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7일후 전장으로 복귀하였다.
30시간의 혈투끝에 그는 살아 남았고 기억나는 격파만 20여대의 적전차를 잡았다고 했지만 전투후 각종보고를 통해 60여대 이상을 격파한것으로 공식 기록되었다.
2년뒤인 1975년 이 전쟁을 통해 단 8명만이 받은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 2차 세계대전의 독일전차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보다 더 격렬했고 우수했다. 왜? 혼자서 그 많은 적을 상대한것도 한것이러니와 그것보다 적보다 대등하거나 야간에는 오히려 열세의 장비를 가지고 싸웠기 때문이다.
[야시장비까지 갇추고 있는 T-55]

[당시 신예 전차 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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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츠비카 그린골드
Tracked from Armishel's Library 2008/05/15 01:16 삭제Zvika Greengold 츠바이 "츠비카" 그린골드(1952~) 로하미 하게타오트(Lohamey HaGeta'ot, 게토의 투사들) 키브츠 [footnote]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대 나찌 게릴라 부대원 출신들이 모여서 형성한 키브츠 [/footnote] 출신. 17세인 1969년에 군에 입대하여 1970년부터 제7기갑여단에서 근무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중 제188 바라크 기갑여단 예하에서의 분투로 일약 이스라엘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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