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돌려서 개전시점인 1967년 6월 5일로 가보자.
요르단이라는 나라의 배경을 쬐금 알필요가 있는데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은 머어어어언 친척인 팔레스타인
들을 도와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요르단이라는 나라 자체가 북으로는 시리아 동으로는 이라크 남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걸프만을 건너 이집트라는 아랍강국으로 둘러싸인 아랍소국이다.
따라서, 요르단은 이스라엘이라는 아랍의 적과 싸움 뿐 아니라 형제국들 틈바구니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은 6월 5일 개전시점에서 요르단에게 이번 전쟁에 참가하지 않아줄것을 요청하였다. 여기에는 Westbank라는 지역자체가 요르단의 GDP 절반을 생산하고 있던 경제의 중심지였으니 이것을 걸고 도박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과 2차 중동전쟁에서 팔짱끼고 다른 아랍국의 요청을 묵살하고 있었던 전례, 그리고 서방의 군사지원과 그 무기로 무장하고 있던 요르단을 우습게 볼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보다는 형제국 (사실 이라크와 사우디, 그리고 시리아)이 무서웠던 요르단군은 이스라엘의 요청을 묵살하고 Westbank(통곡의 벽을 가운데로하여 오른쪽 지역)에서 예루살렘 시가지에 포병사격을 실시한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다른 배경이 있었다. 처음 개전당시 신나게 얻어터지던 이집트가 난데없이 이스라엘을 열심히 두들겨 패고 있다고 선전전을 실시하였고 이에 속아 넘어간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요르단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언듯보기에는 화끈한 돌격의 사전 공격으로 인식될 수 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주력이 시나이 반도를 관통해 갈때 주력이 빠진 적에 화력만 퍼붓는 실수를 범한다. 물론 요르단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게 내 생각이다. 왜? 당시 요르단의 주력전차부대는 이스라엘을 횡단하여 서해로 나가기위해 요르단 Westbank에 집결중이었다.이렇게 꾸물거리는 사이 시나이 전투는 고비를 넘어 승리의 여신이 이스라엘에게 미소를 보낼때쯤 급히 시나이 전선에서 빼낸 병력으로 6월 6일부터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제 55공수여단은 시나이에 투입될 예정으로 장비가 시나이 전선에 가 있는 바람에 비무장인채로 민간버스에 몸을 싣고 예루살렙으로 달려왔다. 예루살렘을 지키고 있던 에루살렘여단으로 부터 급히 실탄과 화기를 얻어고 공격 준비가 끝난시점인 6월 6일 새벽 2시에 겨우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구시가지는 기원전부터 세워진 방벽과 미로와 같은 시가지, 거기다가 언덕으로 경사진 덕에 방어측이 유리한 전투였다.
[동예루살렘 구시가진의 전경]

작전 개시 2시간이 지난 시점에 1단계인 철조망과 지뢰를 돌파하는데만 여단병력의 반이 손실된다.
요르단군의 참호에 돌입하자 이제 반대의 입장이 되버렸다. 짧은 우지기관총을 소지한 이스라엘군이 길고 화력은 쎄지만 연사능력이 떨어지는 M1을 소지한 요르단군을 압도한 것이다.
요르단군은 제1왕실근위사단으로 나름 최정예였으니 그야말로 정예끼리의 전투에서 단발의 차이로 이스라엘이 승기를 꽂는다.
그시각 예루샬렘 주변 언덕을 차지하기 위해 양군의 군마인 기갑부대가 혼전을 벌였고 슈퍼셔먼을 주력으로 하고 있던 이스라엘기갑부대는 M-48 패튼으로 무장하고 있던 요르단군 기갑부대와의 전투에서 20대중 12대를 격파함으로써 또한번 승리로 만들었다.
오후6시경 예루샬렘은 이스라엘 수중에 떨어졌고 전투후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피가 흐르지 않은 골목이 없었고 탄흔이 박히지 않은 벽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55공수여단을 지원하던 기갑부대는 대부분의 전차장이 저격으로 전사한 뒤였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요르단은 Eastbank까지 위협당하자 M-48 40대를 주력으로 반격을 시도한다.
이에 이스라엘의 자랑인 공군력으로 집결중인 요르단의 수송부대와 기갑부대에 대해 공습으로 대응한다.
마지막 피날레는 기갑여단이 맡았다. 제리코 도심에 진입하기위해 이동중 포도밭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요르단군의 M47/48전차 16대를 발견하고 이들과 다시 전투를 하였고 이들을 제압한다.(도망치기 장기인 이집트와는 또다른 면이다. 이렇기에 이스라엘은 요르단을 그나마 껄끄러워한다.)
제리코시에 진입한 이스라엘군은 요르단 수도 암만으로 부터 40km까지 밀어붙임에 따라 요르단은 UN에서 중재하는 휴전에 합의하여 전투를 종료한다.
전후 녹아없어진 이집트에 비해 손실이 그리 크지 않았다. 일례로 요르단에서는 15,000명 손실이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의 전과확인은 최대 1,500에 불과하다는 발표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전사 299명, 부상 1,457명의 전쟁최고의 피해를 입는다.
[작전지휘부 3인방. 우지나르키스, 모세댜얀, 후에 중동평화로드맵을 만들었다 암살된 라빈총리이다.]

[통곡의 벽에서의 이스라엘군]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2007/02/28 12:07 2007/02/28 12:07

트랙백 주소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