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스라엘 전쟁사에서 굵직한 전쟁사를 마무리할 때가 온것 같다.
그 뒤로 이스라엘은 만만한 팔레스타인이나 한때 중동의 파리라 불리웠던 베이루트를 포함한 레바논 두들겨 패기에 여념이 없으니 그 작은 세세한 전쟁까지 쓰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 10/14~15 사이의 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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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0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스라엘 수비군과 이집트 공격군의 단타전이었고 이집트는 갑자기 진격을 멈추고 진지 안으로 들어가버린 상태.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으로 집중된 증원으로 인해 증원도 없이 막기 바쁜 상태로 전선이 고착되었다.
14일 그동안 참호와 요새속에 쳐박혀 있던 이집트군이 전투기의 지원과 포병사격을 등에지고 이스라엘 방어군을 향해 1,000여대의 전차를 투입하였다.
이스라엘은 찔끔찔끔 증원되어온 전차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전차 600대를 모아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이집트의 참패!
그날 해질 무렵까지 최소 200여대의 이집트군 전차가 숯덩어리가 되었고 이제 칼자루는 이스라엘군이 쥐게 된다.
그시각 어느정도 골란고원 전투가 마무리된 시점에 이스라엘 증원부대는 헐레벌떡 시나이로 달려왔다.
- 10/15~17 사이의 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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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샤론은 이집트로의 도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고 이 주장대로 샤론에게 모든 책임을 맡겨 버린다. 10월 15일 17:00시 증원과 정비가 완료되자 샤론 기갑여단을 주축으로하여 이집트군 방어선 북쪽으로 쇄도해 들어간다.
(샤론기갑사단은 진격로 확보, 아단기갑사단은 방어선 돌파후 이집트 3군 포위망 완성, 마간기갑사단은 아단기갑사단을 지원하였다.)
여기서 또한번의 이스라엘군 장기가 나오는데 바로 공지합동전술로 적의 SAM은 기갑부대가 적 보병부대는 기보합동부대가 적 전차는 공중화력지원으로 무력화 시켜가며 하나의 기계가 톱니바퀴 돌듯이 방어선을 돌파해버린다!

수에즈 운하를 도하완료한 시간이 16일 03:00. 단 몇시간 동안 이집트군은 침묵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역정보전에 매번 휘둘려온 이집트가 이번에는 너무 조심한 탓에 도하사실이 보고 되지 않아 버린것이다.
그결과 샤론의 부대는 후방의 비축물자, SAM기지 등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도륙내어 버리며 이집트 3군단의 포위망을 완성하여 간다.

-작전회의중인 샤론기갑사단장(이사람이 후에 총리가 된 샤론총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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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론과 모세댜얀의 만남/ 위사진과 동일 시기에 찍힌듯 하며 댜얀의 영국식 방풍경은 롬멜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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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격부대 샤론기갑사단을 방문한 댜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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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로 달려나갈듯이 주행중인 이스라엘 전차와 자신의 차량위에서 식사하며 진격중인 기갑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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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전투가 맹렬했던지 사진과 같이 사단장이 머리에 부상을 입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렇듯이 뛰어난 감투정신으로 주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고 후속부대를 수에즈 넘어 이집트로 상륙시키는데 성공한다.

- 당시 방어선 공략전에 사용된 셔먼 개조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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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수에즈를 넘어 이집트로 진격중인 이스라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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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계획은 카이로까지의 쾌속 진격이었지만 확전을 반대하는 미국때문인지 이는 좌절되고 위 지도의 녹색선처럼 수에즈시까지 공격하여 이집트군 3군단을 포위하는것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그러나 3군단의 이목을 끌기위해 투입된 조공 기갑여단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들의 희생덕에 후에 총리가된 샤론은 맘껏 적 후방을 유린한것이다.

- 10/18~23 사이의 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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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집트군 2군단의 주 방어선을 돌파하자 파죽지세로 3군단의 후방을 돌파해버린다.
이로써 아단/마간/샤론 기갑사단의 대포위망이 완성되어 이집트 3군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다.

이기간중 중동연합군은 이스라엘에게 휴전을 제의하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그러자 중동은 석유를 무기화 (바로 OAPEC에서...)한다. 생산을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만으로도 전세계에 오일쇼크로 주식이 폭락하고 난리 아니었다.
그러자 부랴부랴 미국/소련이 양쪽을 달레며 휴전을 제의하고 10월 24일 UN에서 휴전이 승인된다.
휴전당시 이집트 3군단은 시나이에 병력 2만과 350여대의 전차로 버티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사론 기갑사단역시 카이로를 향해 으르르릉 대는 형국이었다.
* 전쟁후 3군단을 위한 음식과 식수가 공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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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1978년 샤론과 사다트는 시나이를 다시 이집트로 돌려주는 협정에 합의한다.
- 두사람은 아마도 힘의 경쟁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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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이후 1994년 요르단과도 평화협정을 채결하였다.

그리고 최근들어 시리아와의 골란고원 반환문제를 여러가지 채널을 통해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1940년대부터 1970년까지 30년이 넘는 기나긴 전쟁의 역사가 남긴것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중동의 강자로써 이제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아때문에 우리 젊은이들도 남부 레바논으로 파병된다니 찹찹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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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UN군이 주둔한지 꽤 됐을 시점인 2007년 6월 26일 테러가 발생해 6명의 UN군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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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길 빕니다.
2007/06/27 17:09 2007/06/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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