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쟁사 - 4차 중동전쟁 (이집트의 공격)

War History/War(1945~1999) 2007/06/13 10:17

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쓴다. 정말 자료 찾기 힘들었다. ㅡㅡa

사다트가 집권한 이집트는 소련과 북한의 군사고문단의 지원아래 강군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군개혁이 끝나는 시점부터 수에즈운하를 건너 이스라엘 방어진지를 훈련삼아 공격하는 실정이었다.

결정의 날인 1973년 10월 6일 속죄일(욤키퍼 데이)는 이스라엘이나 아랍계통이나 모두에게 종교행사일로 마치 서구권의 크리스마스, 동양에서는 구정과 같은 그런 때이기에 군도 필수병력을 제외하고 가족으로 돌아가 쉬는 그런때였다.

마치 베트남전에서 1968년 월맹에 의한 떼뜨공세(구정공세)와 같은 그런 소설과 같은 작전이 시작될 줄은 이스라엘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아직 6일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고 시나이라는 엄청나게 넓은 땅을 자신들의 통제에 두고 있었던 때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수에즈운하의 상륙을 저지하기위해 모래언덕을 쌓았고 그 모래 언덕위에 방어초소를 지었다. 이스라엘판 마지노선 되겠다.
올라가면 갈수록 흘러내리는 모래로 인해 미끄러지는데다가 포격을 때려봤자. 천상모래이기에 포격맞은 지점의 모래가 날라가더라도 좌우에서 다른 모래들이 쏟아져 내려와 구멍난 곳을 매꾸는 비가 안오는 사막에서나 가능한 그런 최고의 요새를 만든것이다.

D-Day인 6일 이집트 코만도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또야?"정도의 반응.
- 좌측이 전쟁당일 초반부의 상황도로 붉게 큰 별표시된 부분이 개전당시의 이집트 코만도의 기습훈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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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집트 본대가 움직였다. 별반응 없는 휴일날의 이스라엘 수비 진지를 간단히 날려버리고 이집트 공병대가 제일먼저 설치한것은 부교도 아닌 물펌프를 이용한 물대포였다.
수에즈운하 강둑의 이스라엘 방어요새. 그 모래성을 향해 물펌프가 작동하자. 수에즈의 물로 인해 그 난공불락의 요새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 열심히 노저어 수에즈를 도하하는 이집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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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대포로 열심히 쏴버리는 상황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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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겹게 모래요새를 기어오르는 이집트군 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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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에즈 방어 요새를 휘저으며 달려 가는 이집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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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기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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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말 간단한 방법으로 밀어붙여 버리자. 이스라엘 전쟁지도부는 당황한다. 전쟁준비도 안되어 있는 이스라엘은 그토록 시간을 벌어줄것이라 믿었던 모래요새가 "독일"산 워터펌프 몇대에 간단히 너무나 쉽게 나가떨어져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도 너무나 쓸말이 없어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이집트군의 작전은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작전으로 평가받는데 10월 13일까지 수에즈 동쪽에 교도보를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이스라엘의 골다메이어 수상은 전쟁지도부의 전원자결까지 언급했을정도로 이스라엘은 시껍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집트군은 전쟁기간 내내 원래 자신들의 영토였던 시나이반도의 1/4도 회복하지도 못했고 정말! 그냥! 단순히! 수에즈운하를 건너 내륙으로 기동하는 교도보를 확보하는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 왜그렇게 놀라워 했는가?

첫째, 싸우면 도망가는 이집트군이 아니었다.
둘째, 싸우면 이기던 이스라엘군이 아니라 그들은 전쟁초반 약간의 살을 벤것으로도 당황해하는 패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이집트군은 RPG-7을 비롯하여 세계최초의 대전차유도미사일 새거를 다량 배치하였고 베트남전에서 입증된 SA계열의 대공미사일을 배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다시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면 이집트군 코만도들은 매일 훈련하던대로 (훈련장소나 마찬가지였던 이스라엘 방어진)수에즈에 공격을 개시한지 30분만에 이스라엘 수비군을 괴멸시켜 버렸고 수에즈운하 위에는 도하하는 기갑부대들이 둥둥떠서 수에즈운하를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은 강력한 공군으로 수에즈운하를 도하하는 이집트군에 공격을 가하지만 강력한 대공방어방으로 수에즈를 건너는 기갑부대를 보호하고 공격하러온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만 죽어나갔다.
이미 베트남전에서 강력한 SAM방어망에 걸려 격추되는 미군기를 이스라엘군이라고 모를리 없었을테고.. 뭐 이까지는 그럴수 있다라고 판단했으리라.
그러나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2일뒤인 10월 8일에 일어난 기갑부대의 완패때문이었을 것이다.

10월 8일 "190기갑여단"이 주축이된 이스라엘 기갑 2개 여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200여대의 전차로 이집트군이 구축한 교도보를 돌파하여 이집트군을 수에즈로 밀어넣을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이집트군은 넓게 포진하고 있지 않은가?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해있는 파란 화살표를 보자. 찐한 화살표가 본 단원의 주제이다.
신나게 달려나가서 이집군의 교도보를 끊어 놓으면 그 후속부대가 달려와 마무리 지을거다라는 환상속에 달려가던 이스라엘군은 한순간의 착각을 깨어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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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맞이한것은 기갑부대도 아니오 참호속에 쳐박혀서 미사일을 날려대던 이집트군 보병이었다.
- A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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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 500m~3Km 평균 시속 115km, 최고 시속 200km의 느림보 AT-3 새거 대전차 미사일을 처음 본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경악했다. 적은 보이지도 않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미사일에 아군 전차가 하나둘씩 깨져나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도 몰랐고 처음 보는 그런 무기를 보았으니 그 현장속에 있었던 전차승무원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하였을 것이다. 새거를 운좋게 피했다 치더라도 당시 이집트군 3명중에 1명은 RPG-7사수였다고 한다. 다시말해 AT-3의 러쉬를 피한 전차는 참로를 돌파하였다 치더라도 RPG-7에게 옆구리나 후방을 내어주게 되었고 결국 파괴되고 말았다.

-베트남전 당시의 RPG-7
그들은 우왕좌왕하던 끝에 결국 전멸하고 말았고 재정비를 위해 후속 부대는 시나이 내륙으로 후퇴하였다.

현대적인 전차 등장이후 60년 쯔음 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전쟁의 공식. "보병은 전차로 잡는다"가 순식간에 깨져나간 첫 사례였던 것이다.

이번편을 마치며 유용원기자의 홈피에서 활동하시는 전 북한특수부대 출신이시자 북한군 전문가로 활동하고 계신 "회오리33"님께 4차 중동전쟁 당시 북한군의 역할에 대해 여쭈어 보았는데 이에 대한 답을 마지막으로 다음편을 기약하자.

-회오리33님의 답변
4차 전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집트군대의 선공격으로 벌어져 시나이 반도를 공격햇던 그때 북한군 군사고문단이 현장에서 전투지휘를 했었다고 북한군에 있을때 확실히 강연. 자료 등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군이 수에즈운하 에 쌓아놓은 모래벽을 고압물 펌프로 허무는 작전도 북한군사고문단에서 했었다는 설~ 전후 이집트 측에서 전쟁기념관 건립과 내부전시를 북한군에 맡겼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2007/06/13 10:17 2007/06/1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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